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렌츠 푸스카스 (문단 편집) ==== 플레이 스타일 ==== ||[youtube(T2BRjEiFnDo)]|| ||[youtube(zeUp_aGj8YA)]||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강력한 왼발 슛이다. 슛도 패스도 심지어 개인기까지 지독하게 왼발만을 고집했기에 별명이 '''악마의 왼발.''' 더욱 무서운 것은 '''85경기 84골을 29세 이전에''' 이룬 것이라는 것.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맞붙었던 [[홍덕영]] 골키퍼에 의하면 그의 슈팅은 너무 강력해서 선방하면 갈비뼈가 부러질 것같은 고통을 주었고 골대에 공이 맞으면 한참동안이나 흔들렸다고 했다. 하지만 그의 문제점 역시 지독한 왼발 고집이다. 오른발로 밀어넣어도 될 상황에서 각도까지 바꿔가며 굳이 왼발로 차려는 움직임을 보여줬다. 영상은 찾을 수 없지만 그것 때문에 많은 골을 놓쳤을 수도 있다. 어쨌든 그래도 푸스카스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다.[* 헝가리 역대 A매치 골 1위(89경기 84골)와 전 세계 역대 A매치 골 5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. 1위는 122골을 기록한 [[포르투갈]]의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이다.] 이런 기록만 보면 최전방 스트라이커일 것같지만 드리블도 수준급이었고 플레이메이킹을 통한 기회 창출 능력 역시 뛰어났다. 매직 마자르의 'MM 포메이션'에서 그는 포메이션 상 코치슈와 스트라이커 위치에 있지만 실제로는 제로톱에 위치한 [[폴스 나인]] 역할의 [[중앙 공격수]]였던 [[히데그쿠티 난도르]]만큼 내려오며 공격을 전개하기도 했었다. 또한 레알에서도 그렇고 팀원들과의 유기적인 공격 연계에도 아주 뛰어났다. 마치 [[요한 크루이프]]가 [[토탈 풋볼]]을 잘 이행해낸것처럼 그 역시도 '소셜리스트 풋볼' 정립에 있어서 크나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. 정말 아쉬운것은 헝가리 혁명이다. 축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[[1956년 헝가리 혁명|헝가리 혁명]]이 없었다면 축구강국은 브라질이 아닌 헝가리였을 수도 있다. 월드컵 결승에는 정말 많은 비극과 기적이 있었지만 푸스카스에게 있어서 최악의 비극은 당연 '[[베른의 기적|베른의 비극]]', 또 스페인으로 귀화했을때는 운없게도 4경기밖에 못뛰고 다시한번 국대 은퇴를 선언했어야 했으니... [[2009년]]에는 올해의 골 상의 이름을 [[FIFA 푸스카스상|푸스카스상]]으로 변경해서 [[발롱도르]]와 함께 수상하기 시작했다. 이를 보면 축구사의 푸스카스가 남긴 발자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. ||<-2>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xU4K12SpDzo)] }}} || || '''푸스카스의 드래그 백''' || 또한 푸스카스는 드래그 백의 창시자인데 위 동영상에서 골을 넣기 전의 플레이가 바로 드래그 백이다. 경기 이후 그는 연습한 적이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기술이라고 인터뷰했지만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심혈을 기울여서 연습했다고 한다. 동료들은 실전에서 쓰지도 못할 걸 뭐하러 연습하냐고 비웃었다고 한다. 참고로, 저 기술이 나온 경기는 그 유명한 잉글랜드가 헝가리에게 6-3으로 패배를 당한 웸블리 참사이다. 드래그 백에 속아서 굴욕적으로 넘어진 수비수도 잉글랜드 축구의 레전드로 명성이 있던 [[빌리 라이트]]였다. 지금 시점에서 보면 "저 쉬운 드래그 백 기술을 저 때까지 안 썼단 말야?" 하고 놀랄 수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발전된 과학기술로 개발된 축구화는 푸스카스의 전성기 시절 나온 물건이고 그 전에 축구할 때 쓰던 신발은 묵직했기 때문에 저런 기술을 잘못 사용했다간 볼 컨트롤도 제대로 못하고 빼앗기게 될 가능성이 다분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